지난달 12일 서울 남대문로 GS건설 사옥. GS그룹 허창수 회장이 주재한 GS건설 이사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3대 주주이자 허 회장의 셋째 동생인 허명수 사장이 대표이사 자리를 내놨다. 해외사업을 총괄해온 우상룡 사장도 사임했다.

허 사장은 경영지원총괄을 맡고 있던 임병용 사장을 대표이사로 추천했고, 논의 끝에 이사회는 받아들였다. GS건설 관계자는 “허 사장이 부실 실적에 대한 책임을 지겠다면서 이미 두 번에 걸쳐 사의를 밝혔고, 이번 이사회에서 받아들여진 것”이라고 전했다.

‘장수를 바꿔 위기를 극복한다.’ 최고경영자(CEO)를 잇따라 교체하고 있는 요즘 건설업계의 사정이 딱 이렇다.

좀처럼 살아나지 않는 건설경기를 이겨내기 위한 몸부림이다. 그런데 사람만 바꾸는 게 아니다. 대표이사의 역할도 ‘사업통’에서 ‘살림꾼’으로 변하고 있다. 공격적인 경영보다 내실을 다지겠다는 뜻이다.

GS건설 대표이사 교체는 파격적이었다. 오너가 스스로 물러난 점도 그렇고, 새 수장이 된 임 사장이 돈 버는 업무를 해본 적이 없는 점도 그렇다. 그는 91년 LG구조조정본부에 입사해 GS 사업지원팀장 및 경영지원팀장을 거쳐 지난해 12월 GS건설 경영지원총괄 대표를 맡았다.

임 사장 취임 뒤 회사의 경영방침은 '많은 일감을 따내기보다 알찬 일감을 골라서 수주하자'다. 그는 “하루하루 전쟁을 치르는 심정으로 내년 흑자 전환을 위해 내달릴 것”이라며 “위기 관리와 함께 신성장 분야에 대한 꾸준한 투자도 중시하겠다”고 말했다.


건설업체 대표교체=경영난 극복을 위한 최후의 수단

지난 15일 대우건설 사옥에서도 임시 주주총회와 이사회가 열렸다. 주요 안건은 5월 사임한 서종욱 전 사장의 자리를 대신할 새 사장을 선임하는 것이었다.

대우건설 경영기획실장과 전략기획본부장을 지낸 박영식 사장이 대우건설의 지휘봉을 잡았다. 대우산업개발 역시 5월 고광현 사장을 새로운 대표로 선임했다.

그는 대림그룹 계열사인 삼호에서 자금재경경영지원본부장을 거쳤다. 두산건설은 6월 양희선 사장을 새로운 수장으로 발탁했다. 두산그룹 내 총무업무를 대행하는 자회사인 엔셰이퍼 대표를 지낸 ‘재무통’이다.

건설업체 대표 교체바람은 건설업계의 경영난을 방증한다. 시공능력평가 4위(2012년 기준)의 GS건설은 1969년 창립 이후 44년만인 올해 첫 적자를 봤다. 올해 예상 영업이익 적자는 7988억원이다.

먹거리도 마땅찮다. 주택시장은 착 가라앉은 데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위축으로 국내건설시장에선 이미 일감이 바닥나고 있는 상황이다. 한동안 해외건설시장에서 ‘외화벌이’가 짭짤했지만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저가 수주’로 몸살을 앓고 있다. 일감을 따와도 남는 것이 없는 것이다.

‘건설맨’ CEO가 떠난 자리를 ‘재무통’ 새 대표가 메우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전까지 대표는 대부분 사업부나 영업부 출신이었다. 국내 혹은 해외건설 수주의 선봉에서 진두지휘하며 ‘바깥살림’에 집중했다.

대대적인 구조조정ㆍ직접실무 챙기기까지

반면 최근 선임된 대표는 회사 살림을 빼곡히 꿰고 있는 ‘안살림꾼’이 대부분이다. 상시 구조조정과 감축, 인수합병(M&A) 등 ‘셈’에 밝은 재무전문가가 필요해진 것이다. 주택산업연구원 김태섭 연구위원은 “불황일수록 ‘돈을 많이 벌기’보다는 ‘번 돈을 아껴 쓰기’에 초점이 맞춰지는 법”이라고 말했다.

새 수장들은 바로 ‘허리띠 조르기’에 들어갔다. 우선 여러명의 대표가 각 분야를 총괄하던 체제를 단일 체제로 바꿨다. GS건설은 총괄(대표이사 3명) 체제에서 임병용 사장 단독체제로 운영된다. 조직의 몸집은 날씬하게 바뀌고 있다.

대우건설이 대표적이다. 박영식 사장은 취임 전부터 대대적인 구조조정을 예고했다. 이미 상무보 이상 임원 140여 명이 사직서를 냈다. 대우산업개발고광현 사장은 취임 직후 11부 2실 2법인에서 8부 2실 3법인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직접 실무를 챙기고 나서기도 한다. 쌍용건설 김석준 대표는 당분간 해외사업부문장을 겸한다. 회사의 가장 큰 경쟁력이 해외시장에 있기 때문이다. ‘큰그림’뿐 아니라 ‘밑그림’부터 챙겨서 해외건설 수주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다. 대우건설 박 사장도 플랜트부문장을 겸한다.

당분간 이런 분위기는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특히 건설업계의 주요 '먹거리'였던 주택부문이 위축돼 경영난에서 쉽게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이홍일 연구위원은 "총체적인 어려움에 처한 만큼 건설업계의 뼈를 깎는 노력과 함께 정부에서도 민간투자 활성화 방안을 마련해 출구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